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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tvN 예능 <알쓸신잡> 시즌 3 2회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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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8일,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시즌 3 2회가 방영됐다.

 

각자 취향대로 그리스 아테네의 고고학 박물관을 둘러보는 잡학박사들.

 

김상욱 교수의 관심사는 일식 날짜를 계산하는 안티키테라 기계였다. 수많은 조각들로 이루어진 이 기계는 안티키테라 섬 부근에서 침몰한 배에서 발견된 청동 물체이다. 사람들은 이것이 무엇인지 몰라 50년간 방치했는데, X-레이가 개발된 후 촬영한 결과 내부에 톱니바퀴와 문자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스는 기원전 1세기에 이런 기계를 완성시킬 정도로 높은 과학 수준을 가진 국가였다.

 

아크로폴리스 북쪽에 있는 옛 아고라와 플라카 거리. 지금도 사람들로 북적북적한 거리지만 과거 소피스트나 소크라테스가 돌아다니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질문을 던졌다는 곳이다.

 

소피스트는 민회에서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한 변론술, 수사학을 비롯해 다양한 학문을 가르치던 사람들이다. 학창시절 우리는 소피스트를 부정적인 의미로 배웠지만, 끊임없는 논쟁으로 논리를 발전시키고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는다는 점은 민주주의에서 필수적인 부분이다. 사유를 중요시하고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 여겼던 동양보다 민주주의가 먼저 시작되고 자리잡은 것은 필연적이라 하겠다.

델피(Delphi)살라미스 섬과 애기나 섬에 비해 델피가 가장 멀다

그리고 그리스 여행 둘째날이 되었다.

 

김영하 작가는 에기나섬과 모니섬을 방문해서 마시고 먹고 마시고 낮잠자며 유유자적. 여기저기 구경다니기에도 시간이 빠듯하긴 하지만, 그리스의 바닷가에서 따스한 햇살 아래 그렇게 여유를 즐기는 것도 이 때만 부릴 수 있는 사치다.

 

다섯 명의 출연자들은 아테네의 메인 항구였던 피레우스에 모여 만찬을 즐겼다. 바다를 바로 앞에 둔 술집이지만 해산물을 취급하지 않는 곳이었다. 출연진들 말마따나 우리나라 호프집 같은 메뉴였는데 배경이 그리스라 색달랐다.

 

그리스인들이 즐기는 프라푸치노는 프라페와 카푸치노를 더해서 만든 것으로 스타벅스가 상품화했다는 것에서부터 시작된 두번째 날의 수다는 스타벅스의 브랜드명과 로고의 유래로 옮겨간다.

 

스타벅스는 미국의 소설가 허먼 멜빌의 <백경(모비딕)>에 등장하는 항해사 스타벅에서 따온 것으로 유명하고, 로고는 그리스 신화의 세이렌의 형상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르사체 로고의 주인공이 메두사라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소크라테스 성애자', '소덕소덕' 유시민 작가는 살라미스 섬을 여행했는데, 살라미스 섬보다는 고대에 있었다던 에리다누스 강을 찾아 떠났던 부분이 주로 언급됐다. 사실은 소크라테스의 흔적을 찾아서 떠났다. 소크라테스가 어린 시절을 보냈다던 케라메이코스. 하류층이 사는 곳이었는데 그런 곳에서 세계 4대 성인으로 꼽히는 위대한 철학자가 성장했다.

 

소크라테스의 매력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유시민은, 소크라테스는 배심원들에게 로고스(논리)로만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지 동정심을 유발하려고 하지 않았고, 투표 끝에 사형이 결정되자 국외로 도망치자는 제자들의 간청을 뿌리치고, 폴리스가 결정한 사항을 회피하는 것은 폴리스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독배를 들었다. 열정적으로 논쟁하고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점이 유시민이 걸어온 길과 흡사하다. 유시민이 집착에 가깝게 소크라테스의 흔적을 밟아보려고 하는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는 것으로는 보인다.

 

김상욱과 유희열이 여행한 델피(델포이)는 그리스 신화에서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던 곳이다. 제우스가 세계의 양쪽 끝에서 독수리를 각각 날려보냈는데, 두 마리가 만난 곳에 옴파로스(그리스어로 '배꼽')라는 이름의 돌을 세워두었다. 유희열이 의류 브랜드 옴파로스의 CM송을 불러대서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아폴론은 예언의 신이다. 아폴론 신전의 여사제가 신전 부근에서 솟아오르는 가스를 마시고 환각상태에서 신탁에 대한 답변을 했다고 전해진다. 답변은 명확하게 딱 떨어지지 않고 다소 추상적이고 모호했다고 한다.

 

테미스토클레스도 페르시아와의 살라미스 해전을 앞두고 아폴론 신전에서 신탁을 했다고 한다. 돌아온 답변은 '나무로 성벽을 쌓아라'였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데, 실은 해전을 원했던 테미스토클레스가 신전의 여사제와 짜고 그런 예전을 얻어냈다는 추측이 있었다. 나무로 배를 건조해 바다에서 적을 물리친다는 계획이었는데, 아테네 시민들의 반발을 없애기 위해 신의 권위를 이용했다는 것이다. 테미스토클레스의 뜻대로 아테네는 살라미스 해전에서 역사에 남는 대승을 거둔다.

 

호메로스이 <일리아스>에 대한 김영하의 관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트로이 전쟁을 다룬 서사시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아킬레우스와 헥토르, 그리고 헥토르의 아버지인 프리아모스 왕 사이에 일어난 지극히 인간적인 스토리가 담겨있다는 그이 해석에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잡학박사들이 식당을 찾는 방식도 재미있었다. 김영하와 김진애는 식당 바깥에 관광객들을 위한 테이블이 없고 현지인들이 입장하는 외국인을 경계하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곳, 유시민은 메뉴에 음식 사진이 있고 외국어가 써있지 않은 곳 등 가급적이면 그리스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식당을 찾으려고 했다. 반면 테이블보 하나에도 분위기를 중시하는 김상욱은 델피 근처 아라호바(<태양의 후예>)에서 식사를 했다.

김상욱이 어느 정도 활약하면서 전체적인 균형미가 살아났다. 역시 개별적으로 코스를 짜서 돌아다니니 분량이 많아진다. 과학자임에도 지극히 비과학적인 신탁과 관련된 곳을 찾아간 것부터가 의외였는데, 또 이 신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분위기를 띄우고자 하는 노력이 보기 좋았다. 확실히 달변과는 거리가 멀고 투박해보이는 그가 이런 센스를 발휘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1회에서는 아테네만 다뤘는데 이번에는 그리스의 여러 지역을 볼 수 있었다. 김진애 박사가 다녀온 크레타 섬, 유시민이 갔다온 살라미스 섬에 대한 분량이 너무 적어서 아쉬웠지만, 오늘 방송에 나왔던 모든 곳이 만족스러웠다.

 

평소 유럽여행에는 뜻이 없었는데 가고 싶어지는 곳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마지막에 유시민은 그리스에 대해 당장은 또 가고 싶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가게 될 것 같은 곳이라고 했는데, 일단 가서 직접 겪은 후에 또 갈지 말지를 판단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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