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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t LA

르브론 제임스, LA 레이커스로 이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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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한참 지난 일이지만 르브론 제임스가 레이커스로 이적했다. 조건은 4년 1억 5330만 달러에 네번째 시즌에 실행할 수 있는 플레이어 옵션이 딸린 계약이다.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로 컴백한 후 지난 몇 년간 1+1 계약을 거듭했던 그로서는 의외인 장기계약이었다.

 

 

 

  지난 파이널에서 클리블랜드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게 완패한 이후 르브론이 팀을 떠날 것은 분명해보였다. 모든 팬들이 궁금해했던건 그의 행선지였을 뿐이었다.

 

 

 

  조엘 엠비드, 벤 시몬스를 중심으로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 준결승까지 진출했던 필라델피아 76ers가 가장 가능성이 높은 팀으로 보였다. 2003년 데뷔 후 지금까지 동부컨퍼런스에서만 활동했던 르브론에게는 가장 편한 무대이기도 하고, 르브론 없이도 젊은 선수들의 힘만으로 어느 정도 성과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여기에 르브론까지 가세한다면 필라델피아는 최소 컨퍼런스 파이널, 나아가 대권까지 노려볼 수 있는 팀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계약서에 서명한 르브론. 옆에는 레이커스 단장 랍 펠린카

 

 

  LA 클리퍼스와 레이커스 중 한 팀으로 갈 것이라는 소문도 무성했지만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봤다. 두 팀 모두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에도 못 갔을 뿐더러 클리퍼스는 이렇다 할 코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레이커스에는 2명의 드래프트 2번픽 브랜든 잉그램과 론조 볼이 있지만 필라델피아의 두 선수와 비교하는 것조차 민망할 정도로 보여준게 없다. 레이커스팬들 입장에서는 잉그램과 론조가 성장해나가는 과정만 봐도 배가 부르겠지만 그건 우리 사정이고.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우승을 위해 분투했던 르브론이 제 아무리 20대 선수들 못지 않은 최상급의 운동능력을 갖고 있다해도 최전성기에서 서서히 내려가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고, 아직 만 32세지만 16번째 시즌을 맞이하는 그에게 챔피언이 될 수 있는 기회가 과연 얼마나 남아있을까. 슈퍼스타급 기량으로 뛸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르브론이 실링이 어디까지일지도 모를 애송이들의 성장을 잠자코 기다려줄 것인가. 그건 아니라고 봤기에 도출된 답은 '노'였다.

 

 

 

  그런데 매우 뜻밖에도 르브론은 레이커스를 선택했다. 르브론의 레이커스 이적 소식은 지난 몇 달간 겪었던 일중에 가장 충격적이었고, 그로 인해 복잡한 감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아니, 30년 가까운 세월 스포츠를 지켜보면서 이런 일은 처음 겪어본다.

 

 

 

  사실 난 르브론의 안티에 가깝다. 그가 2년 연속으로 클리블랜드를 리그 1위로 견인하며 코비 브라이언트와 레이커스의 우승에 가장 큰 걸림돌로 여겨졌을 때만 해도 코비팬인 내게는 선의의 경쟁자 정도로만 여겼다. 그런데 그가 '디시전 쇼'에 출연해 마이애미 히트로의 이적을 발표하면서부터 그에 대한 적대감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2011 파이널 상대였던 댈러스 매버릭스의 덕 노비츠키에 대한 조롱, '리얼월드' 발언 등이 연이어 터지면서 르브론에게 갖고 있었던 일말의 호감마저도 눈 녹듯이 사라져버렸다. 그 후로는 르브론이 속한 팀이 파이널에 올라갈 때마다 상대팀을 응원했다. 지난 5년간 르브론은 딱 한 번 챔피언 자리에 올랐는데, 그 한 번조차도 어이없게 우승을 내준 골든스테이트가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아무리 요즘 리그 트렌드가 '미들은 쓰레기'라고 해도 15년차가 되도록 발전없는 점퍼도 그에게 실망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였다. 그가 본격적으로 우승을 노리고 나서부터 그의 팀에 젊은 선수는 점점 사라지고 나이든 롤플레이어들만 남게 되는 것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선수 영입은 물론 감독 선임까지 개입한다는 확인되지 않은 뒷이야기도 석연치 않았다. 이 모든 것이 정말 르브론의 어두운 그림자인지, 아니면 내가 르브론을 미워하기 시작하면서 그를 계속 싫어하기 위해 찾아낸 구실인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의 안티였던 시간이 너무 오랜 탓일까. 르브론이 레이커스로 올 수도 있다는 소식이 그리 반갑게 다가오지 않았다. 르브론이 오게 된다면 잉그램, 론조, 카일 쿠즈마, 조쉬 하트 중 적어도 한 명은 팀을 떠나게 될 가능성이 커보였기 때문이었다. 남아있는 선수들도 3점 라인 밖에서 대기하다가 르브론의 킥아웃 패스를 넣어주는 처리반으로 역할이 한정될 우려도 컸다.

 

 

 

  하지만 르브론에 이어 라존 론도, 랜스 스티븐슨의 합류가 확정되면서 걱정을 덜었다. 론도는 정통 포인트가드, 스티븐슨은 리딩을 보조할 수 있는 선수다. 그동안 스스로가 원했던 것도 있지만 특별한 전술 없이 '르브론 고!'를 외치는 모 감독 밑에서 뛰면서 득점은 물론 리딩까지 맡느라 체력적으로 부담이 컸던 르브론에게 짐을 나눠서 질 수 있는 동료들이 생긴 것이다. 이는 레이커스의 수뇌부가 르브론에게 득점에 좀 더 치중해도 된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이제 한 팀에서 만난 스티븐슨은 언제든 귀에 바람을 불어줄 준비가 되어있다

 

 

  현재 레이커스의 선수구성을 고려해볼 때 비어있는 파워포워드 자리에 르브론이 들어갈 가능성도 존재한다. 물론 명목상의 파워포워드로 실제 플레이는 지금까지와 큰 변화가 없을 수도 있으나, 더 오래 선수생활을 가져가기 위해서 포지션 전환과 플레이스타일 변경은 충분히 고려해볼만한 선택지다.

 

 

 

  게다가 르브론은 1년 정도 여유를 갖고 지켜보겠다며 혹시나 하는 우려를 안고 있는 (나같이 의심많은) 일부 레이커스팬들을 안심시켰다. 처음에는 전적을 고려한 '밑밥깔기'로 보였지만, 이 발언은 그의 진심으로 보인다. 실제로 르브론을 영입했던 주 이후 레이커스는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카멜로 앤쏘니 영입전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않았고, 하고자 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리한 출혈을 감수하면서까지 카와이 레너드를 영입하는 악수를 두지도 않았다.

 

 

 

  더 이상의 추가적인 영입이 없어 브룩 로페즈와 줄리어스 랜들이 빠져나간 인사이드가 휑해보이는건 어쩔 수 없지만, 새롭게 가세한 선수들의 검증된 기량과 기존의 어린 선수들의 성장이 강한 시너지를 불러일으키길 기대하며 다음 시즌을 기다려본다. 특히 르브론이 레이커스의 기대주들을 업어키워서 포텐을 폭발시키고, 구태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열렬히 응원하기로 마음먹었다. 나같은 안티도 열혈팬으로 바뀔 수 있도록 그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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