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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생활

도쿄 나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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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도 나카노구. 일본에 1년간 머무는동안 살았던 곳이다.



JR 츄오선, 도쿄메트로 도자이선 나카노역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집이 있었다. JR과 도쿄메트로는 서로 다른 회사라 역과 선로를 따로 운영하는데, 나카노역은 개찰구도 같고 일부 구간에서 같은 선로를 이용한 덕분에 이용하는 입장에서는 아주 편리했다. 츄오선은 일반 열차는 물론 도쿄 서부와 도쿄역 사이를 운행하는 쾌속이 있는데, 나카노역은 쾌속이 정차하는 곳이라 이것 역시 좋았다. 일반열차를 타면 3개역에 6분이 걸리는 신주쿠역이 쾌속은 논스톱으로 4분이면 도착한다. 도쿄역까지는 대략 24분밖에 안 걸린다.



나카노역은 남쪽 출구와 북쪽 출구가 있다. 남쪽 출구로 나가면 코반(파출소)이 있고, 미츠비시UFJ 은행이 보인다. 은행 왼쪽길로 들어서면 도서, 음반, DVD 렌탈샵인 츠타야와 우체국, 유쵸은행(우체국 은행)이 보인다. 하지만 집과 반대 방향이라 그리 자주 갔던 길은 아니다.



북쪽 출구로 나가자마자 상점가가 눈에 띈다. 왼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특이하게 생긴 썬플라자가 있다. 다시 상점가로 돌아오면,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구조의 거리다. 위에는 비를 막아주는 지붕이 설치돼있고, 가게들이 서로 마주보는 형태의 길이 100미터 정도 이어져있다.



나카노 브로드웨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상가는 입구에 있는 분메이도(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나가사키 카스테라 전문점)부터 시작해 음식점(라멘집, 우동, 회전초밥, 햄버거, 조각케이크, 빵집, 카페, 과자가게, 떡집 등), 편의점, 안경점, 문구점, 드럭스토어, 옷가게, 신발가게, 담배가게, 마사지샵, 금권샵, 게임센터(오락실), 빠치스로(파칭코와 슬롯머신), 통신사, 펫샵, 병원 등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곳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나카노 브로드웨이를 유명하게 만든건 만다라케다. 만다라케는 주로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관련 피규어, 소품 등을 취급하는 매장으로 도쿄 내에서는 시부야, 아키하바라, 지방의 주요 도시에도 지점이 있지만, 본점은 바로 이곳 나카노다. 여기에 살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나카노는 아키하바라, 이케부쿠로와 더불어 오타쿠들의 3대 성지라고 한다. 어쩐지 동네를 걷다보면 일본인들보다 더 오타쿠스러운 차림을 한 서양인들이 눈에 띄더라니.



오타쿠들의 성지라고 해서 애니메이션만 생각하면 곤란하다. 아이돌 굿즈 전문점도 있는데, 일본 아이돌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빅뱅, 방탄소년단 등의 상품도 당당하게 쇼윈도에 진열돼있다. 일본에서 우리 아이돌들이 얼마나 인기있는지 여기서 새삼 느끼게 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자주 찾았던 곳은 중고 야구용품을 취급하는 가게였다. 이곳은 일본 프로야구선수들이 실제로 착용하고 사용했던 물건들을 판매하고 있다. 매장은 작지만 싸인볼은 물론이고 스파이크, 글러브, 배트, 배팅장갑 등 일본야구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혹할만한 아이템들로 가득하다.



3층에 있는 만다라케를 돌아다니다보면 뜻밖에도 중고 손목시계를 판매하는 매장들이 눈에 띈다. 그동안 시계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아서 아는 브랜드도 몇 개 없는데, 롤렉스, 파텍필립, 오메가, 까르띠에, 태그호이어 정도? 그런데 우리 돈으로 억대를 호가하는 시계를 그곳에서 처음 영접했다. 나는 듣도보도 못한 브랜드의 중고가가 정말 억 소리 나오게 비싸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살면서 명품 시계 한 번쯤 차고 다녀봐야지!' 월급쟁이 신분에서 벗어날 수 없을 내게는 그저 꿈만 같은 일이겠지만 버킷리스트 중 하나라고 생각해두자.



이 건물 지하로 내려가면 나카노에 놀러온 사람들이 꼭 찾는다는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다. 4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이 집은 여러 가지 맛의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최대 4단까지 쌓아서 먹을 수 있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치다가 그냥 떠나자니 아쉬워서 귀국 3일 전에야 처음으로 들러서 먹어봤는데, 오, 안 먹고 돌아왔으면 후회했을 것 같은 맛이다. 아니, 한 번만 먹고 온게 후회되는 맛이다. 언젠가 도쿄에 놀러가게 된다면 또 한 번 먹고 싶다. 두 개 먹어야겠다.



나카노역과 집 사이에는 라이프, 세이유, 이토요카도, 산토쿠 같은 슈퍼들이 있어서 먹거리를 살 때 편리했다. 돈키호테도 자주 들르는 곳 가운데 하나였다. 한국에 있을 때도 대형마트나 백화점 구경하는걸 참 좋아했던 나에게는 꽤나 마음에 들었던 장소였다. 늘 익숙한 제품들뿐인 한국 마트도 항상 흥미로운데, 생소한 물건들로 가득한 일본 마트를 즐거운 마음으로 둘러보는건 당연했다. 퇴근길에 이 중에 한 두군데를 꼭 들러서 돌아보다가 마음에 드는게 있으면 사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 외에도 벚꽃이 활짝 피어있던 길, 수다스러운 원장님이 있는 헤어샵 등 잊고 있던 장소들이 글을 쓰다보니 하나둘씩 떠오른다. 1년동안 셀 수 없이 오갔던 거리가 눈감고도 찾아갈 수 있을만큼 생생하게 머릿 속에 그려진다. 다음에 또 이곳에 가는건 언제가 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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