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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주머니

<공부의 신>을 통해 본 일드 리메이크의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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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에서 인기리에 방영중인 드라마 <공부의 신>. 일본의 만화가 미타 노리후사의 작품인 <드라곤자쿠라(국내번역판 - '최강 입시 전설: 꼴찌, 동경대 가다)>가 원작인 <공부의 신>은 10회가 방영된 현재 2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월화드라마 top의 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인기를 끄는 원인은 수험생 및 예비 수험생들에게 필요한 공부 비법을 전수하며 중고등학생들과 교육열이 높은 주부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는 점에 있겠습니다. 제작진은 여기에 러브라인을 첨가하며 시청자들의 관심을 고조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는데, 백현(유승호 분)과 풀잎(고아성 분)의 키스신이 등장해 현정(지연 분)과의 삼각관계 구도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는 것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주인공들간의 삼각관계를 시작으로 강석호(김수로 분)와 한수정(배두나 분)을 비롯해 곳곳에 러브라인을 깔아두고 있지만, 그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들이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공부의 신'이 아니라 '연애의 신'이라며 비꼬는 의견들이 주를 이룹니다.


저 역시 이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드라마 자체로서의 원작이라 할 수 있는 일본 TBS의 <드래곤 자쿠라>와 비교해 볼 때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던 터라 일드 리메이크에 대한 생각을 이번 기회에 풀어보고자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 러브라인


최근 몇 년간 리메이크된 일본 드라마(이하 '일드'라고 합니다)는 MBC의 <하얀 거탑>의 성공을 시작으로 KBS의 <꽃보다 남자>, <결혼 못하는 남자>에 이어 <공부의 신>에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시청률면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고, 이슈의 중심에 서기도 했으며, <하얀 거탑>과 <결혼 못하는 남자>의 경우는 작품성면에서도 인정을 받았습니다. 원작 자체에서 대놓고 서민과 재벌 2세들간의 삼각관계를 그려 우리나라 드라마와 별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없었던 <꽃보다 남자>와 달리 두 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일드 특유의 다양한 소재를 한국의 정서에 맞게 재구성하는 데 성공했고, 연기력 좋은 배우들이 이를 잘 표현해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나친 우연과 얽히고 섥힌 연애구도 등 이제는 한국 드라마(이하 '한드'라고 합니다)의 병폐로 여겨지는 요소들을 제거함으로써 성공을 거뒀던 위 두 작품과는 달리 <공부의 신>은 한드의 단점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보다 학생들의 연애에 개방적임에도, 적어도 비쥬얼면에서는 뛰어난 배우들(야마시타 토모히사와 나가사와 마사미)을 캐스팅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소꿉친구의 관계를 넘지 않았던 일드에서와는 달리 한드는 군데군데 러브라인을 만드는 것으로도 모자라 '남자와 여자는 친구가 될 수 없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듯 두 사람을 키스까지 시켜 드라마의 전개가 산으로 가고 있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그동안 '학원물 = 학생들이 연애하는 드라마', '메디컬 드라마 = 의사들이 연애하는 드라마' 등으로 공식화될 정도로 처음에는 신선하다가도 반드시 복잡한 연애구도가 들어가며 작품의 전체적인 점수를 깎아먹는 경우를 지겹도록 많이 봐왔습니다. 가까운 예로 <베토벤 바이러스>를 들 수가 있겠죠. 일본과는 달리 방영시간이 길고, 주 2회 방영인데다 사전제작을 채택하지 않는 한국의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용납을 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이러한 연애구도가 시청률의 보증수표이자 만병통치약처럼 통했는지는 몰라도 이제는 인터넷의 발달로 미드와 일드를 보며 눈이 높아진 시청자들에게는 역효과를 낼 수 있음을 제작진은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2. 독창성의 결여와 기타 문제


가장 중요하면서도 궁극적인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KBS는 <꽃보다 남자> 이래 <결혼 못하는 남자>, <공부의 신> 등 일드 리메이크작들을 월화드라마로 방영하고 있습니다. 외견상으로 흥행을 이어가고 있고, 현재의 <공부의 신>도 3사 월화드라마 가운데 시청률면에서 top을 달리는 중입니다. 하지만 이제 'KBS 월화드라마 = 일드'라는 공식이 성립하는 것 같아 걱정이 앞섭니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점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독창성의 결여 - 방송사간 시청률 경쟁이 심해지고 작품성은 있지만 인기가 없으면 조기종영을 피할 수 없는 현재, KBS는 새로운 소재의 신선한 드라마를 만들어내 정면돌파하기 보다는 일본에서 성공한 드라마를 리메이크하는 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시청률 확보와 광고수익 제고에는 성공했을지 모르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작가들의 능력 발전 내지 한드의 경쟁력 강화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방침입니다. <아이리스>, <추노>같은 작품을 제작할 능력이 있는데 왜 이런 행태를 반복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정서상의 문제 - 아무리 한국에 맞게 설정을 바꾼다고 해도 근본적으로는 일본인들이 쓴 작품입니다. 나름 조심스럽게 전체 줄거리만 혹은 겉으로 보이는 설정만 가져왔다고 생각할지는 몰라도 일본적인 색채가 어느 정도 드러나는 것이 사실입니다. 게다가 제작진도 알지 못한 사이에 은연중에 일본풍의 요소가 스며들어간 부분도 충분히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언론에서는 청소년의 정서 문제를 들어 왜색문화를 비판하고 근절하자는 주장을 끊임없이 해왔는데 하필이면 공영방송인 KBS가 일드 리메이크에 앞장서고 있으니 모순되는 상황이 아닌가 싶습니다.


시청료 문제 - 역시 시청료 이야기를 빼놓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상업방송사인 타방송사들과는 달리 KBS는 국민의 시청료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청료의 범위 내에서 간판에 걸맞는 방송을 해야하는 것이 공영방송사의 도리입니다만 여러 차례 일본 작품 판권을 사다가 방영하는 행태는 공영방송사를 설치하고 운영하는 취지에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말로만 '국민의 방송'이라고 하기보다는 이런 점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끝으로 언론도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할 책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칭찬과 호평 일색의 보도(그나마도 감상문 수준에 그치는)를 내놓고 있습니다. 영화 <아바타> 꼬투리잡기보다는 이런 것들에 대해 지적하는 것이 우리 방송산업의 발전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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