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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라운드에서 두 차례 격돌해 콜드게임과 영봉승을 주고 받아 상대전적 1승 1패를 기록하던 한국와 일본 양국은 주최측의 농간에 의해 2라운드에서도 한 조에 편성되어 맞대결을 피할 수 없을 것이 예상되었습니다. 아니나다를까 두 나라는 각자의 첫 상대였던 멕시코와 쿠바를 꺾어 준결승 직행을 놓고 승자 대결을 펼치게 되었던 것이지요.
일본은 2007년에 그해 최고의 투수에게 주어지는 사와무라상을 수상한 다르빗슈 유를 선발로 내정했고, 우리나라는 지난 1라운드 마지막 경기 영봉승의 주역이었던 봉중근 카드를 다시 한 번 사용하며 반드시 이기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습니다. 오늘 경기에 패한다 하더라도 패자부활전에서 만나게 될 쿠바를 꺾는다면 준결승에 진출할 수는 있지만, 탈락을 막기 위해서는 총력전을 펼쳐야하기 때문에 투수력도 낭비하고 투구수 제한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 이긴다 해도 전력에 큰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라인업에 큰 변화가 없었던 일본과는 달리 우리 대표팀의 김인식 감독은 공격의 선봉인 1번 타자 자리에 그동안 쭉 선발로 출전하던 이종욱을 빼고 최근 타격감이 좋은 이용규가 배치했고, 5번에 부진한 이대호 대신 추신수, 6번에 이진영 기용된데 이어 3루 수비에 이범호가 들어감으로써 공격과 수비를 동시에 강화한 전략적인 라인업을 선보였습니다. 그리고 김인식 감독의 이 구상은 (부진한 모습을 보인 추신수를 제외하면) 기가 막히게 맞아들어가며 한국에 승리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지고 있던 상황에서 역전승을 거둔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한일전은 대부분 3점차 이내로 승패가 갈렸기 때문에 선취점을 올리는 것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낸 선수들이 바로 오늘 스타팅으로 출전한 이용규와 이진영이었습니다.
이용규는 1회 첫 타자로 나와 일본의 선발 다르빗슈로부터 3-유 간을 가르는 좌전안타를 뽑아내며 1루에 출루했습니다. 이어서 2번 타자 정근우의 타석 때 도루를 성공시키며 빠른 발을 과시했고, 정근우가 내야안타를 치자 3루에 안착, 무사 1, 3루의 찬스를 만들었습니다. 3번 타자 김현수가 실책으로 출루한 사이 이용규는 홈을 밟아 오늘 경기의 선취점이자 결승 득점을 올렸지요. 6번 이진영도 계속된 1사 만루의 찬스에서 2타점 좌전 적시타를 침으로써 우리가 초반에 기선을 제압하는 데 큰 공헌을 했습니다. 2회부터 상대 선발 다르빗슈가 7개의 탈삼진을 뽑아내며 무실점으로 호투한 것을 생각하면 1회에 뽑은 3점은 그야말로 천금과도 같은 점수가 되었습니다.
오늘 선발이었던 '의사' 봉중근은 지난번 대결에서와는 달리 거의 매회 안타 또는 볼넷으로 주자를 내보내며 조금 불안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일관성 없는 심판의 스트라이크 판정도 한몫 했지만 말입니다. 그렇지만 2개의 병살타를 잡아내는 등 고비 때마다 땅볼 타구를 유도해 휼륭하게 위기를 넘겼습니다. 오늘도 공을 던지자 마자 1루로 달려가는 봉중근의 베이스 커버는 일품이었습니다. 글러브에서 공이 빠져나와 주자를 모두 살려주기는 했어도 넘어져가면서까지 타구를 잡아내려했던 수비도 정말 대단했습니다. 주자가 1루에 있어도 탁월했던 그의 견제 능력 덕분에 그 어떤 일본의 발빠른 선수들도 감히 도루를 꿈꾸지 못했습니다.
아, 견제하니까 오늘 경기에서 아주 재미있었던 장면이 있네요. 야수선택으로 출루한 이치로가 리드폭을 넓게 가져가자 봉중근이 1루를 쳐다보며 견제하는 시늉을 했었죠. 이 페이크 동작에 화들짝 놀란 이치로는 슬라이딩하며 1루에 귀루했는데, 이런 장면이 또 한 번 나오면서 나중에는 '이치로의 몸개그'라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간 타격으로 대표팀의 승리에 기여했던 김태균과 이범호는 오늘만큼은 탁월한 수비력으로 승리를 지켜냈습니다. 이범호야 원래부터 수비를 강화하기 위해 기용된 선수라 크게 놀랄 것이 없었지만, 김태균이 정말 놀라웠습니다. 놓치면 2루타 내지는 3루타가 될 수 있는 타구를 무려 세 차례나 잡아낸 것이죠.
특히 9회초가 압권이었습니다. 여기에는 김인식 감독의 혜안도 한몫 했는데요. 보통 1루수는 1루에 주자가 있으면 견제구를 받기 위해 베이스에 붙어있다가 투수가 공을 던지면 2루 쪽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김인식 감독은 주자에 신경쓰기보다는 빠져나가는 타구를 잡는 데 주력하라며 정상적인 수비 위치를 지키라고 지시를 내렸지요. 감독의 예측은 그대로 적중해 마침 그 위치로 타구가 날아왔고, 김태균은 침착하게 그것을 잡아 직접 1루 베이스를 밟으며 실점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 이 타구가 빠져나갔다면 일본은 1점을 따라붙음과 동시에 계속해서 스코어링 포지션에 주자를 내보내 계속해서 찬스를 이어나갈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기에 우리 입장에서는 정말로 좋은 수비였습니다.
다르빗슈가 2회부터 150km 초반대의 빠른 직구와 각도 큰 유인구로 탈삼진을 뽑아내며 무실점했고, 계투 요원들도 호투해 3-1로 우리의 불안한 리드가 계속 되었습니다. 한 점만 추가해도 우리가 심리적으로 안정된 경기를 펼칠 수 있는 상황에서 그렇게 고대했던 추가 득점이 8회에 나왔습니다. 그것도 안타 하나 없이 4개의 볼넷으로 말입니다. 특히 2사 만루 상황에서 이범호 타석 때가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의욕이 넘친 탓인지 초구와 2구 유인구를 헛스윙해 불리한 볼카운트로 출발했던 이범호는 이후 유인구를 계속해서 골라내며 끝내 볼넷을 얻어 밀어내기로 귀중한 타점을 기록했던 것이지요. 이때의 MBC 허구연 해설위원의 예측도 흥미로웠습니다. '일본 야구는 이런 상황에서도 볼로 타자를 유인해 헛스윙을 유도한다. 여기에 속으면 안 된다'고 하자 정말로 볼카운트 2-2 상황에서 연달아 2개의 유인구가 들어왔고, 이범호가 공을 끝까지 보며 참아냄으로써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었죠.
3년만에 보는 펫코파크 마운드의 태극기
8회말에 한 점을 추가한 덕분에 9회초 수비는 다소 긴장된 상황에서도 비교적 여유있게 마칠 수 있었습니다. 김광현이 안타를 맞기는 했지만 아웃카운트를 잡아놓고 나갔고, 우리의 수호신 임창용이 깔끔하게 두 타자를 요리하며 우리나라는 일본을 4-1로 물리치며 준결승 직행에 성공했습니다. 일본 타자의 체크스윙으로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아냈을 때의 그 감격을 아직도 잊을 수 없네요.
이로써 우리나라는 1조에서 가장 먼저 준결승에 진출했고, 내일 있을 쿠바 vs 일본의 승자와 모레 조 1-2위 결정전을 치를 예정입니다. 다시 한 번 일본과 맞붙을 가능성이 높기도 하지만, 그 경기만큼은 승패에 연연하기보다는 앞으로 있을 준결승전을 대비해 연습경기를 갖는다는 마음으로 경기를 해줬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선수들은 다르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요.
어쨌든 오늘도 이겨서 정말 기분이 좋네요. 기분좋은 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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