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나카노)에서 가장 가까운 번화가이자 일본에서 살던 1년 중에 최소 300일은 지나쳤던 곳이다. 물론 환승 때문에 그냥 지나친 적이 대부분이었지만, 퇴근 후에 잠깐 들러서 쇼핑하기에도 부담 없고 주말에 가서 구경하기에도 좋았다. 정기권이 있었던 덕분에 가고 싶으면 하루에 몇 번이라도 갈 수 있었다. 일본 생활 초기에는 돈도 아끼고 동네 구경도 할겸 걸어서 가보기도 했는데 50분 정도면 신주쿠에 도착했다.
신주쿠역 동쪽 출구
5개 회사(JR, 오다큐, 케이오, 도영지하철, 도쿄메트로)의 노선 9개(야마노테선, 사이쿄선, 쇼난신주쿠라인, 츄오 쾌속선, 츄오-소부선 각역정차, 오다와라선, 케이오선, 오에도선, 마루노우치선)가 지나가는 신주쿠역이 있다. 세계에서 하루 평균 이용객이 가장 많은 역으로 기네스북에 올라있을 정도다.
신주쿠역 13, 14번 플랫폼
JR만 해도 노선이 다섯 개에 플랫폼이 16개다. 당연히 출퇴근 시간마다 붐비는데, 특히 전철에 구겨지듯 타야하는 출근시간대가 최악이다. 야마노테선은 2~3분마다 한 대씩 올 정도로 배차간격이 짧은데도 항상 꽉꽉 찬다. 고탄다-오사키-시나가와 쪽에 있는 회사에 다니는 승객이 많으므로 만약 신주쿠에서 탈 때 자리가 없었다면 거의 시나가와까지 쭉 서서 가야한다.
여러 노선이 지나는만큼 신주쿠역은 굉장히 넓고 출구도 많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인천의 부평역 지하던전에 해당하는데 외국이라 더 복잡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길눈이 밝은 편이고 자주 다니다보니 익숙해져서 별로 헤매지 않고 목적지를 잘 찾았다(오히려 가장 복잡하게 느껴졌던 곳은 이케부쿠로역이었다).
빅쿠로(빅카메라+유니클로)
신주쿠에 본사나 지사를 둔 회사도 많고 도쿄 도청, 신주쿠 구청 같은 대규모 관공서도 있는 번화가라 유동인구가 엄청나다. 이세탄, 오다큐, 케이오, 타카시마야, 마루이 등 기존의 대형 백화점들이 각축을 벌이는 가운데 루미네에 뉴우먼까지 생겨 쇼핑할 곳이 정말 많다. 우리나라의 하이마트에 해당하는 종합가전매장 빅카메라와 요도바시카메라도 있어서 가전제품 사기에도 좋다.
멘야무사시
주변에 먹을 곳도 많은데 주로 갔던 곳은 라멘집이었다. 매달 비싼 집세에 서울에 있는 집으로 송금도 하느라 항상 여유가 없어서 어쩌다 한국에서 친구들이 놀러오면 같이 가서 먹는 정도였다. 츠케멘으로 유명한 멘야무사시, 역시 츠케멘으로 알려져 있고 갈 때마다 사람들이 줄서있는 타츠노야, 양기 많기로 소문난 지로우라멘, 한국 못지 않게 맵고 진한 라멘을 먹을 수 있는 나카모토 등 맛집이 즐비하다. 신기하게도 네 군데 라멘집이 반경 100미터 안에 몰려있다.
기노쿠니야 서점
가장 좋아했던 곳은 동쪽 출구 앞이었다. 나가면 바로 앞에 초대형 스크린으로 뮤직비디오를 틀어주는 스튜디오 알타 건물이 있는데(스크린을 보려면 가부키쵸 입구 쪽으로 가야한다), 마침 지나갈 때 K-POP 가수의 노래가 나오면 괜히 반갑게 느껴진다. 일본 최대의 서점 기노쿠니야 서점도 자주 들렀던 곳이다. 빅카메라와 유니클로가 같은 건물에 있는 빅쿠로, ABC 마트,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무인양품(무지루시)도 있다.
신주쿠 돈키호테
동쪽 출구에서 길을 두 번 건너면 가부키쵸가 나온다. 가부키쵸 입구에는 24시간 내내 영업하는 돈키호테가 있다. 워낙 유명한 곳이라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지만, 사실 다른 지역의 돈키호테나 다른 드럭 스토어에 비해 가격이 비싼 편이다. 차라리 우에노 아메요코 시장에 있는 드럭 스토어에서 사는 편이 이득이다.
가부키쵸 입구
유흥의 거리인 가부키쵸는 게임 <용과 같이(龍が如く)> 시리즈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술집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좀 더 안으로 들어가면 호스트바가 널려 있다. 옆 동네로 가면 게이바들이 몰려있는 거리가 있다고 하는데 그쪽으로는 가보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가부키쵸
해가 지고 나서 가부키쵸에 들어서면 삐끼들이 저마다 자기네 가게로 오라며 호객행위를 한다. 한 번은 한국에서 놀러온 후배와 그곳을 지나가다 몇 명이 말을 걸어오는지 세어본 적이 있는데 무려 열 명이 넘었다. 개중에는 짧은 한국어로 말을 거는 이도 있었다. 걷다보면 무료안내소라고 간판을 내건 곳이 있는데 여기는 조심해야한다. 잘 모르고 갔다가 터무니 없이 바가지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토호시네마 고질라
가부키쵸 입구에서도 보이는 토호시네마 건물 위에는 고질라가 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명물인데, 매시 정각이 되면 긴장감 넘치는 음향이 흘러나오면서 눈과 발톱에 불이 들어오고 입에서는 불을 뿜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정시가 되기 전에 가서 한 번쯤 보는 것도 좋다.
토호시네마 신주쿠점
그레이스리 호텔과 같은 건물에 있는 토호시네마는 우리나라의 CGV나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같은 멀티플렉스 체인이다. 일본에서 업계 2위라는데 영화관이 대부분 깔끔하고 안락한 우리나라와 달리 지점마다 편차가 있는듯 하다. 시부야점에 가본 지인의 말에 따르면 좌석이 오래 돼서 시트 일부가 뜯거져 있는 자리도 있었다고 한다. 다행히도 <기도의 막이 내릴 때>를 보러 갔던 신주쿠점은 2015년에 오픈해서 우리나라 영화관과 별 차이가 없었다.
모드학원 코쿤타워
서쪽 출구로 나가면 특이하게 생긴 건물이 우뚝 솟아있다. 전문학교인 모드학원에서 세운 코쿤타워이다. 건물의 생김새만 봐도 자유와 창의성이 느껴진다. 참고로 오사카와 나고야에 있는 모드학원 건물도 이것 못지 않게 특이하다.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금권샵들이 늘어서 있다. 기차표부터 영화, 전시회, 야구, 공연 등 여러 가지 티켓을 정가보다 싸게 구입할 수 있는 곳이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야구를 직관할 때도 여기서 단돈 5백 엔에 외야석 교환권을 사서 가기도 했고, 청춘 18 티켓을 살 때도 이 곳 금권샵들을 기웃거렸다.
금권샵 안쪽 골목은 야키토리(닭꼬치) 냄새가 식욕을 자극하는 오모이데오코쵸다. 야키토리 뿐만 아니라 호르몬(곱창) 구이집들도 많은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혐한인 집도 있다고 하니 주의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도쿄 도청
서쪽 출구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지 않고 화살표를 따라 지하도를 10~15분 정도 걸어가면 도쿄 도청이 나온다. 유명 건축가 탄게 켄조의 작품으로 48층에 높이가 243미터에 달하며 건물 자체가 랜드마크이다. 도쿄에는 스카이트리, 도쿄타워, 록본기 힐즈 등 전망대가 많은데 거의가 유료다. 도쿄 도청은 가장 좋은 무료 전망대이다. 맑은 날에는 후지산이 보인다고 하는데 내가 올라갔던 날은 살짝 흐려서 아쉽게도 볼 수 없었다. 남쪽 전망대와 북쪽 전망대가 따로 있으므로 두 군데 다 가보는 것이 좋다.
신 남쪽 출구
새로운 남쪽 출구로 나가면 바스타 신주쿠가 있다. 우리로 따지면 서울의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에 해당한다. 전국 각지를 오가는 버스가 모이는 곳인데 안 가는 지역도 은근히 많다. 일본에 있는 동안 도쿄 밖으로 이동할 때는 전철만 타서 결국 한 번도 이용해보지 못했다. 앞으로는 일본으로 여행을 가도 원거리 이동시에는 JR 패스를 이용할 계획이라 저기서 버스 탈 일은 어쩌면 영영 없을지도 모르겠다.
신주쿠역 동쪽 출구 앞
뭔가 안다는 듯이 주저리주저리 써놨지만 아직 못 가본 곳도 너무나 많다. 마지막 6개월간 주 6일을 일하느라 일요일은 집에서 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다소 무리를 하더라도 돌아다닐걸 그랬나보다. ABC 마트에서 사지 못한 신발, 기노쿠니야 서점에서 못 산 책들, 아직 못 가본 맛집들도 아쉽지만 무엇보다도 눈 감으면 그려지는 신주쿠 거리 자체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