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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주머니

도쿄에서 본 무궁화: 2017년의 광복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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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5일은 일본에서 종전기념일이라 불리고 있다. 1945년 8월 15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왕 히로히토의 무조건 항복 선언이 담긴 육성이 전국에 방송되었다. 일본 입장에선 그리 즐거운 기억이 담긴 날이 아니기 때문에 종년기념일이란 이름이 붙어있어도 우리와 달리 공휴일이 아니다.


대신 8월 11일이 공휴일인 '산의 날'이고 8월 15일쯤이 우리의 추석에 가까운 '오봉'이라 일본인들은 이 시기에 여름휴가를 즐기는 경우가 많다.


나는 출근을 해야하는 입장이라 '한국에 있었다면 오늘 쉬었을텐데'라며 잠시 투덜거렸지만 생각해보면 나쁠건 없었다. 평소같았으면 직장인과 학생들로 콩나물 시루처럼 답답하던 야마노테선 전철이 한산해졌기 때문이다. 신주쿠부터 시나가와까지 8정거장, 20분도 안 걸리는 거리지만빽빽한 사람의 숲에서 시달리면서 기를 빨리는 것과 앉아서가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평일 아침마다 출근하는 직장인들의 행렬로 장관을 이루던 코난 출구까지 이어지는 통로도 거짓말처럼 여유로웠다.


덕분에 도착은 빨리 했지만 일찍 들어가긴 싫으니 역 앞을 잠시 배회하기로 한다. 그러다 무궁화가 심어진 화단을 발견했다. 여기서 일한지 두 달이 넘어서 처음 보게 된 것이다. 마음에 여유가 생겨야 비로소 주변이 보인다는건 바로 이런걸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군대 가면 효자되고 외국 가면 애국자가 된다더니 한국에서 봤다면 그냥 지나쳤을 무궁화가 그렇게 신기하고 반가울 수가 없었다.


무궁화를 보니 오늘 쉬지 못한다고 불평했던게 살짝 부끄러워졌다. 그제서야 광복절의 의미를 다시 떠올렸다.


일본 땅에서 맞이한 광복절, 공교롭게도 그 날 우연히 발견한 무궁화까지. 앞으로 매년 광복절이 찾아올 때마다 2017년 8월 15일 아침에 봤던 광경, 복잡미묘했던 그 때의 감정이 다시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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