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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주머니

영화 <용의자 X의 헌신>에 대한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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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9일에 영화 <용의자 X의 헌신>이 개봉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일본에서 드라마로 제작되어 보는 이들은 충격에 빠뜨렸고, 또 올해 손예진, 고수 주연의 영화로 제작되어 개봉될 예정인 <백야행>의 원작 소설을 쓴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 작품 <용의자 X의 헌신>을 영화화 한 것입니다.


내용에 들어가기에 앞서 우리나라와는 다른 일본의 특이한 드라마 제작 방식을 설명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일본의 방송사들은 총 9~12회 분량으로 드라마를 제작해서 일주일에 한 편씩 3개월간 방영하는 분기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드라마의 평균 시청률이 높게 나오거나 시청자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이 있으면 몇 개월 후 혹은 1년쯤 후에 일단 2시간 분량의 스페셜 드라마를 만들고, 수 개월 후에 영화를 제작해서 극장에 상영합니다. 즉, 드라마-스페셜-영화의 구조로 되는 것입니다. 인기가 조금 있는 드라마는 스페셜 단계에서 끝나지만, '돈이 될 것 같은' 작품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영화로 제작되어 수익을 극대화하게 됩니다. 이런 경우의 스페셜은 드라마와 영화 사이의 내용을 이어줌과 동시에 보는 이들의 흥미를 유발해서 후에 개봉할 영화의 잠재적인 관객으로 만드는 하나의 장치가 되지요. 스페셜에서 아예 대놓고 홍보를 하기도 합니다.


2001년 제작된 기무라 타쿠야 주연의 드라마 <히어로>는 30%가 넘는 평균시청률로 어마어마한 인기를 얻었던 작품이죠. 보통 늦어도 1년 후에 스페셜이 제작되었던 다른 작품과는 달리 <히어로>는 여러 가지 여건 때문에 무려 5년이 지난 2006년에 스페셜이 나왔고 바로 이듬해 영화화되어 흥행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이 스페셜 역시 드라마와 영화 사이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영화 홍보물 역할을 톡톡히 했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두 주연 후쿠야마 마사하루와 츠츠미 신이치

<용의자의 X의 헌신>도 마찬가지입니다. 2007년 후쿠야마 마사하루, 시바사키 코우 주연으로 드라마 <갈릴레오>가 제작되었습니다.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탐정 갈릴레오>와 <예지몽>을 드라마로 만든 것이죠. 성격이 특이한 천재 물리학자 유카와 마나부가 열정적인 여형사 우츠미 카오루와 함께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한다는 내용입니다. 적당히 긴장감 있는 내용과 카라사와 토시아키, 히로스에 료코, 카토리 싱고, 아오이 소라, 호리키타 마키, 후카다 쿄코 등 호화 게스트진의 출연으로 21.9%라는 높은 평균 시청률을 기록했고, 그에 힘입어 2008년에 스페셜과 영화 <용의자 X의 헌신>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반년 정도 늦게 개봉하게 되었는데요.


앞서 성공한 드라마를 영화화한 예로 <히어로>를 들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 일본 현지에서는 엄청난 성공을 거뒀죠. 하지만 우리나라로의 수출을 겨냥해 일부 씬을 부산에서 촬영하고 이병헌과 백도빈(배우 백윤식의 아들이자 얼마전 정시아와 백년가약을 올린)까지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겨우 25만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쳐 흥행 참패를 기록하고 말았습니다.



같은 작품이 일본에서는 성공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실패한 원인이 어디에 있을지 한 번 생각해봤습니다. 저는 가장 큰 원인이 '내용이 연결성'에 있다고 봅니다. <히어로>를 본 대부분의 일본 관객들은 드라마부터 시작해 스페셜을 거쳐 영화를 감상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등장인물도 거의 동일하고 내용이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게다가 개봉 1년 전에 스페셜이 나왔기 때문에 이를 통해 시청자들을 고스란히 극장으로 흡수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영화 <히어로>만이 '짠'하고 나타났을 뿐입니다. 오직 영화로서 다른 작품들과 극장에서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일본 관객들은 '극장판에서는 어떤 내용이 전개될까?'하는 기대감을 가졌던 것과는 달리 우리 관객들 앞에서는 그저 여러 영화들 가운데 하나였을 따름이지요. 주인공인 쿠리우 코헤이라는 검사가 이전에 어떤 활약을 했는지 아무 것도 알지 못한 채 앞의 내용이 싹둑 짤린 것만 같은 상태에서 <히어로>를 영화로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흥미를 일으키지 못하는 영화였을 것 같네요. 아마 저 25만 관객의 상당수도 드라마 <히어로>를 이미 감상한 일드 매니아분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번에 개봉될 <용의자 X의 헌신>도 잘못하면 <히어로>의 뒤를 따르게 될 우려가 있습니다. 저같은 일드 매니아들은 드라마 <갈릴레오>와 스페셜까지 모두 섭렵한 상태라 개봉일이 빨리 다가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지만, 대다수의 분들에게는 그저 한 편의 추리영화에 지나지 않을 수가 있겠지요.


혹시 <용의자 X의 헌신>을 보실 분은 내용 이해를 위해 미리 <갈릴레오>와 스페셜을 보셨으면 하는게 제 마음입니다. 똑같이 재미가 없어도 영화만 보고 '아~ 재미없네'하는 것과 앞의 내용을 모두 알게 된 후 영화를 보고 조금 실망하는 것과는 달라도 한참 다르니까요. 이왕이면 <갈릴레오>를 모르는 분들도 재미있게 보실 수 있는 작품이라면 더 좋겠지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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